어때. 이런 말이라면, 조금은 벅찬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겠나?여행길을 내달리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거야. 이 시대의 저편에서, 내가 그러하길 바라니까.
어때. 이런 말이라면, 조금은 벅찬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겠나?여행길을 내달리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거야. 이 시대의 저편에서, 내가 그러하길 바라니까.
어떠한 기억은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 위안을 준다. 폭풍과 파도에 떠밀려 위태로울 적마다 점멸하는 기억이 내가 나로서 남아 있을 수 있게끔 지탱하는 게지. 하여 기억의 무덤 속에서도 기어이 끌어올려지는 회억은 불멸과 닮아 있다.
우리 시대가, 우리의 이름이 너로부터 불멸을 부여받게 된다.
‘기억’ 역시 영원하지는 않아. 기억이란 건 사실과 현상을 지극히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어 기록하는 것이니까. 바람에 유실하듯 시간이 흐를수록 빛바래고 변형되며 어떤 기억은 잊히고, 어떤 기억은 짧게나마 빛나며 윤곽 잃은 형세로 이어가는 게지. 하지만······.
육신을 이곳저곳 남기고 싶지는 않았건만······ 어휴.
매 순간이 소실의 연속인 게지.
오늘도 잃었어?
고독이란 게 어디 계절과 순간을 가리던가. 안 그래?
잠들어 있으면 너무 잠든다 무어라 종알종알, 깨어 있으면 잠들지 않는다며 또다시 종알종알······. 하여튼 이래서 불완전한 것들이란······.
(*윌리엄 셰익스피어, The Tempest 인용.)
자, 네 생을 잇대어 내가 잔존하는 것이라면 선택도 너의 권리 중에 하나일 테지? 어디 한번 골라 볼 테냐?
첫째, 망기는 네놈의 몫이니 기꺼이 잊힌다.
둘째, 몇 번이고 읽히고 몇 번이고 쓰이고 몇 번이나 재해석되어 차츰 나를 잃는다.
셋째, 내 여태 언사를 날붙이인 양 휘두른 적은 없다마는 네 구질구질한 모습이 적잖이 꼴사나워 이제야 제대로 휘두르길 다짐한다.
넷째, 묵음默音.
이보시오, 영웅 나리. *우리는 꿈과 같은 존재이므로 우리의 자잘한 인생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노라* 그리 줄곧 읊었는데 살아서는 지독한 수마와 흉몽으로 의지해 살아남았고, 죽어서는 항거할 수 없는 불면에 응한 이자가 생의 파편을 어찌하면 좋겠소?
잠들면 잠든 대로 '영감, 뭐 해? 영감님 자요? 영감님 죽었어? 영감, 언제 일어나? 영감, 영감, 유감탱 일어나!'라며 방자하게 굴 녀석이 왜 자꾸 망령을 재우려 하지?
애초에 죽었다. 죽은 놈이 영면에 들려 하던 걸 누구 씨가 부르며 구태여 끄집어내고 있는데 내 이제 무어라 더 읊어드릴까?
떠오른 태양은 드높고, 햇살은 우리를 투과할 뿐입니다.
혹은 아름답게 포장된 체념의 한숨.
기록하고 기다리고 기원하는 희망.
일생이라는 서책에서 호흡마다 활자를 남긴다면, 얼마나 깊게 패일 정도로 새겨야만 우리 사이에 놓인 낱장을 뜯어내고 재회할 수 있을는지요.
서늘한 정적 뒤에 이어지는 추회까지도.
질릴 정도로······ 변함이 없군.
일단 네가 느린 건 알겠다, 녀석아. (손 휘적휘적.)
정말 할 수 있는 용기는 있고? (물끄럼.)
정말······ 푸딩이로군. 언제 돌아오는 거냐, 대체?
왜, 포옹이라도 하려고?
참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어도 놀라고 있으니, 언어란 언어는 죄 무덤에 묻어두어야 할까 성싶군.
오냐, 느이 영감 왔다. 한데 상태가······ 음, 아니다. 한결같이 못났다는 점에서는 일상이로군. 응.
허, 참. 다시 존재를 굳혀야지?
그래. 컵푸딩 영웅님, 왔나?
컵푸딩···?
······. (잠시 영웅을 관찰하고 있다.)
녹아내린 젤리... 가 아니라 너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