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철학사
들뢰즈 대담 중
말로 정복자들
지바고
203.16 reverence, the angel of the world: `reverence | (That angel of the world) doth make distinction | Of place ’tween high and low’ (Cymberline, IV. ii. 247-9).
121.4 Reaping the whirlwind: 'For they have sown the wind, and they shall reap the whirlwind' (Hos. 8:7).
투르게네프
베르그송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 Weep no more, woful shepherd, weep no more
For Lycidas, your sorrow, is not dead,
Sunk though he be beneath the watery floor...
— Through the dear might of Him that walked the waves,
Through the dear might...
John Milton, Lycidas - pastoral elegy on the death by drowning of Edward King
“플로, 그 사람 일은 생각하지 마. 그러니까…… 그 일. 늘 있는 일이잖아. 사람들은 너무 약해. 못 견디고 포기하지. 하지만 세상은 굴러가고. 알지? 삶은 계속된다고. 전하고 똑같이. 그리고 몇 주가 지나면 새 체육 교사가 오겠지.” 그녀는 급하게 남편을, 느긋한 그의 모습을, 그가 대변한다고 믿는 모든 것을 향해 외쳤다. “아무것도 전하고 똑같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는 약하지 않았다고. 절대 아니지. 너무나 강해서 참을 수 없었던 거야. 그런데 우리가 돕지 않았지.”
토베 얀손, 체육 교사의 죽음 중
물론 우리는 청년 마르크스가 마르크스로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보다 더 빠르게 살고자 하지 않으며, 마르크스를 대신해 살고자 하지 않고, 그를 위해 단절하거나 그를 위해 발견하고자 하지 않는다.
루이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할 포스터 실재의 귀환 중
로마의 교외 변두리, 황무지 위에 다시 올려진 이 회화적 십자가형의 장면에서, [예수 옆의] 십자가에 묶인 강도 역할을 맡은 이 하층 프롤레타리아는, 결국엔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보다 더욱 모욕적으로, 더욱 순수하고 더욱 비극적으로, 끝내는 ‘정말로’ 죽게 될 것이다. “불쌍한 스트라치. 죽는 것 말고는, 그 또한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이 그에게는 없었구나”라고 오손 웰즈는 말하게 될 것이다.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민중들의 이미지)
나는 의연하고 오랜 기쁨으로 삶의 모든 규칙을 파괴하는 장난꾸러기처럼 눈가에 주름을 잡고 웃었던 알프레디노와 루치아노의 얼굴과 함께, 산탄젤로 성 아래 테베레강의 다리 아래로 보이는 태양이 까맣게 태워버린 밤을 꼬박 새웠다.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펠릭스(과타리)의 죽음에는 유한성, 한계를 넘어서는 것의 불가능성에 대한 격분이 존재한다. (...) 나는 그가 우는 것을 보았다. 나도 때로는 운다. 나는 그가 내 어깨에 기대 “나는 그것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이 유한성, 이 부정적 결정성은 견뎌낼 수 없어”라고 말하며 우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실제로 그가 직면한 도전으로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갈가리 찢겨졌다. (안토니오 네그리)
네그리